능소화(명예) 페리도트(지혜) 다크그린 지르콘(정신의 위안)

RH-B, 사자자리

 

이런 걸 따져가며 좋아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전자칩은 도마뱀 문신 아래. 문신 밑이 아니라 아래에. 마치 여기 좀 보라는 것처럼 자랑하듯이 문신을 새겨놓은 것처럼.

 

01 마르첼 싱클레어

마르첼 싱클레어가 추문에 시달린 것은 2189년 사건이 일어났던 그 당시 걀라르호른에 재학중이던 마르첼의 조카가 실종된 시점에서 약 4년이 지난 뒤,2193년 무렵이었다. 안부는 커녕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던 그의 조카를 격전지 한가운데에서 보았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물론 마르첼이 본인의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대답은 늘 정해져 있었다. 

조카인 미스텔 싱클레어 양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늑대 가면 무리와 함께 투쟁지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입니까?

현재 조카의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저는 물론 가족 역시 힘쓰고 있습니다. 괜한 억측은 삼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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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레반틴 싱클레어

몰락하는 신들의 세계를 불살라버린 검. 그가 제 이름을 버리고 고민하여 골라낸 것은 우습게도 전쟁의 효시를 본따 다듬었던 것과는 반대의 결을 달리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시작보다는 끝이 좋댔던가, 시작의 순간 그 자리에 내가 있었으니 매듭 역시 내 몫이라던가. 항상 강조하는 책임감을 핑계로 둘러댈 뿐이었다.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기껏 공들여 염색한 의미가 없잖아.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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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 이름은 버린 주제에 싱클레어의 성을 버리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심을 주동하기에 좋은 패가 아닌가. 다른 누구도 아닌 마나하임과 헤임달에 깊게 연관되어 있는 마르첼 싱클레어와 같은 체질로 발현한 조카가 그들의 사상을 외면했다. 그렇다면 그는 변절한 것인가? 아니면 맹종을 버리고 등을 돌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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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문에 휩쓸리고 시달렸을 마르첼 싱클레어,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으나 동시에 그들을 안타까워했다. 하루 빨리 당신들이 눈 앞을 가린 거짓들을 털어내고 옳고 그름을 명확히 알아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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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Fimbulvetr

미스텔 싱클레어는 찌라시 하나에 휘둘리고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인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했다. 어리고, 여렸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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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전부터 품어왔던 의문에 또 의문이 쌓이고 불신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으나,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따르겠다는 결정을 당장에 낼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끊임없이 망설이는 모습에 그들은 말했다. 네게서 빼앗아간 '선택 할 수 있는 자격' 을 우리가 되찾아 주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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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텔 싱클레어는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라도 금방 배우고 몸에 익혔다. 마나하임을 향한 충성심과 비프로스트에 대한 강한 신뢰 역시 자각하지 못한 채 오랜 기간 강요받아온 학습의 결과였다. 그 때문에 레반틴의 태도나 행동들 역시 교육의 영향이라는 주변의 오해나 착각 역시 더러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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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수 있는 자격' 을 되찾기도 전에, 미스텔 싱클레어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내버렸으니 아주 대단한 착각이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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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Mephistophe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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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기할까요? 제가 그 자를 슬며시 제 길로 끌어들이도록 허락하시면,」

「주님은 그 자를 영영 잃어버릴걸요.」

괴테 - 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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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틴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 기민하고 예민한 것은 여전해 상대방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혹할만한 것들을 조곤조곤 속삭여 사람 하나 쥐락펴락 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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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조나 고문, 교화에 품을 들이고 정성을 들일거라면 억지로 입을 잡아벌릴 게 아니라 스스로 입을 벌리도록 만드는 쪽이 나중을 생각한다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쓰러트릴 나무라면 목을 베어버릴 게 아니라 근간이 되는 뿌리부터 썩어문드러지게 만들어 스스로 쓰러지길 기다리는 게 낫다고. 본디 인간이란 궁지에 몰린 순간 내밀어지는 손이나 호의 따위에 약해지는 법인데다 어지간히 빌어먹을 놈이 아니라면 호의와 친절, 그 이상의 것에 은혜를 갚기 마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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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지간히 빌어먹을 놈이라면 그간 들인 품이 아깝긴 해도 꺾어버리는 일을 택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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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한데….

능소화, 펜싱, 책, 머리를 쓰는 일, 낮잠, 산책,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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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싫다는 말은 어디로 들었어?

과로, 단순한 작업, 명확하지 않은 것, 오래 전 놓아버린 이름과 비슷한 가닥으로 엮인 이름들.(본명, 애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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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지독하게 따라붙는다니까.

손끝으로 옆머리를 꼬아대는 것, 사색할 때 손에 쥔 물건(책, 가방, 지갑 등)의 가장자리를 문지르는 것, 내딛는 걸음의 시작은 늘 오른발 먼저. 인내의 순간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는 것.

 

etc.

이제는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의 어머니, 아버지, 이제 스물 네 살이 되었을 이란성 쌍둥이 동생들, 그리고 본가에서 키웠던 햄스터 라타토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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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벌어졌던 그 해에 태어나 헤임달로 차출된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 동생들-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 전장에서 스치듯 본 일은 있어도 말 섞은 기억은 없어. 물론 걔네는 내가 자기 언니, 누나라는 거 모르겠지만.-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다. 과거 걀라르호른의 어린 학우들을 살뜰하게 보살피던 기억 덕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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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가리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다. 가릴 처지도 아니거니와 단 하나 싫은 티 역력하던 것도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젠 어린애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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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는 게 없는 것과 별개로 미식을 즐긴다. 비위 상하는 맛을 참고 견디는 것보다 맛있는 걸 먹는 일이 더 좋은 건 당연한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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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전장에 나서기보단 중추의 컨트롤 및 전술지휘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인간을 도구처럼 다루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나 ‘더 많이, 더 오래’ 살려두고 싶다는 간절함 탓에 노력이 제대로 빛을 보는 일이 드물었기에 오해를 사는 일도 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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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술과 체력을 단련하는 일 역시 여전히 소홀함이 없다. 오랜 시간 볼모를 붙들고 있는 일은 생각보다 품이 들고 인내가 필요했으며, 인내는 체력에서 비롯되기에. 신체강화 능력자 혹은 피지컬에 큰 차이를 보이는 상대가 아니라면 지원군이 도착하기까지 버틸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정작 본인은 최대한 물리적인 마찰을 피해 도망치기 -레반틴 스스로가 도망치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바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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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취미생활이 있댔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게 꽤 평소 이미지와 잘 들어맞는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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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 적이면 품어 안던 인형, 녹음이 물결치던 생활공간. 모든 것들을 과거의 잔재로 남겨두는 것조차 부정하려는 것처럼 어릴 적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졌고, 먼저 입에도 올리지 않는다. 과오를 인정하는 것만큼 인간사에 중대한 일도 없지. 나는 여전히 겁쟁이라 인정하지 못할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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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주스, 점심에 진하게 내린 커피, 저녁에 연하게 우린 홍차. 새벽엔 따뜻한 물. 여전한 루틴.

생활패턴이 엉망이 되면서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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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기 전까진 절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키고 싶은 게 있다거나, 이루고 싶은 게 있다거나 그런 거창한 이유는 없다. 말했듯 단순히 책임감일 뿐이다. 내가 그 자리에 존재했고, 과거의 잘못을 속죄해야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이 강박 탓에 자주 악몽을 꾸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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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라도 애칭으로 부르는 일은 없도록 하자. 고의라면 더욱이. 자신의 과오를 타인의 손이 들추어내는 일을 진절머리 내도록 싫어한다. 최대한 점잖은 방향으로 티 내겠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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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딩에 큰 유감은 없다. 필요하기 때문에 손을 내주었고, 품에 안아 다독였다. 레반틴은 기본적으로 상냥하고, 자비로우니 간절하게 굴면 굴수록 한껏 예쁨받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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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레반틴의 방을 드나드는 센티넬들은 있었으나 흔히 말하는 잠자리와 같은 형태가 이뤄져왔는지는 불명.